Every Tuesday

코로나가 무너뜨린 설날

HANIM 2021. 2. 14. 12:10


설 마지막 날인 어제 점심, 카페에 다녀온 잠깐 사이 집에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동생은 한참 잠긴 목소리로 너도 라면 먹을거냐고 물었다. 밝은 목소리로 당연하지 대답했지만 어울리지 않아 얼른 입을 닫았다.
아빠가 방에 계셨지만 식탁엔 나와 엄마, 동생 3인분의 식기만 올랐다. 조금 후 방에서 쟁반을 들고 나온 아빠는 혼자 라면을 끓여 식사를 했는지 4구 반찬 접시와 작은 냄비 등등을 부엌에 갖다 둔 후 바로 집을 나갔다.
식탁 위 묘하게 무거운 분위기가 티비를 보면서 밥을 먹으니 좀 걷혔다. 엄마가 슬쩍 입을 뗐다. 아빠가 아침에 갑자기 화를 냈다고. 내가 별 생각 없이 왜 설인데 밥도 안 차려주냐고 화냈냐고 했더니, 엄마가 눈을 크게 뜨시며 내가 한 말 토씨도 안 틀리고 그대로 이야기했다고 놀라셨다.

예전이었으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약 10년 전 정도까진 설이니 추석엔 아빠의 고향에 가서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부엌 살림으로 음식을 하고, 읍에서 한참을 나가 시장에서 장을 보고, 할머니 말동무도 해 드리고, 불편하고 추운 방에서 잠도 잤으니까. 이동안 아빠는 사우나에 가고, 잠을 자고, 밥상을 받았다. 말 몇 마디면 간식도 나왔다. 운전을 하긴 했지만 엄마도 동일하거나 더 많이 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죄송하다고 많이 우셨지만, 나는 그보다 할머니가 우리를 봐주셨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맞벌이로 엄마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할머니가 우리에게 밥 짓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그게 너무 화가 났다는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약 두 해 전, 캐나다에서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빠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화를 냈다기보단 밥을 같이 먹으려면 받지만 말고 다같이 준비해서 -최소한 식기 세팅이라고 해서- 먹었음 좋겠다고 한 말이었다. 여기가 식당은 아니지 않냐고. 못할 말도 아니었지만 (지금도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천하의 몹쓸년이 되었다. 사실 아빠도 눈치는 챘었는지 화난 표정으로 앉아있던 나에게 먼저 화를 냈다. 밥 한 번 먹기 힘들다고. 그러고는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들어갔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가 나를 혼내거나 나무라는 시늉이라도 했겠지만 가만히 계셨다. 이 이후에도 변한 건 아주 쥐똥만큼이다. 아주 가끔 마음이 동할 때에나 물을 뜨거나 숟갈을 놓거나, 먹고 나서 자신이 먹은 식기를 치우거나 하는 식이다. 이것도 티비에 재미있는 것이 하면 하지 않는다. 식기세척기를 엄마가 지른 이후 식기세척기가 손으로 설거지를 하는 것보다 영 안 좋다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이렇던 뭇 남성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이지 않는 명절이란 견딜 수가 없나 보다. 우리는 이미 4인 가족이기에 누가 하나만 와도 5인 이상이라 아무도 우리집에 오지 말라 엄마가 이야길 했지만 그래도 동생은, 조카네는 안 오냐며 반색을 했다. 굳이 카톡으로 동생네를 연결해서 명절 오전 예배를 드리고 세배를 받았다. 조카딸이 올해 몇살인지도 모르면서 조카네까지 연결하라며 어플이 어쩌고 하는 걸 엄마가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어제 갑자기 화를 낸 건, 엄마가 추측컨데, 설인데 갑오징어를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동생이 어디 나가지 말자고 반대했더니 엄청 투덜거리며 쌓아놓고 있던 모양이다. 이미 한차례 (본인이 원한) 외식으로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코로나에 민감해 있을 때였다. 내 이혼한 사실은 주변에 말하지 말라며 아직 사위와 잘 있는 척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이혼한 게 부끄럽냐 했다가 아주 큰 싸움으로 번졌고, 아빠로부터 네가 싫다는 이야길 들었고, 그 이후로는 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



코로나로 많은 일상이 무너졌다. 모든 것이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차라리 코로나가 고마울 때가 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이다. 명절에 모이지 못해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평소에 관심을 기울여야 가까워진다. 가족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게 아니라 공동체로 생각해야 애뜻해진다.한쪽의 희생으로만 유지되는 것이 전통이라면 그것은 착취에 가깝다. 누굴 위한 명절이고 가족인가? 어차피 때가 되면 무너질 게 더 빨리 무너진거라면 이참에 모든 걸 새로 쌓을 필요가 있다.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알게 된 지금, 지금이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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